[르포] 일부 생필품 판매 늘었지만 ‘사재기’ 없어… 해외선 '사재기 열풍'
[르포] 일부 생필품 판매 늘었지만 ‘사재기’ 없어… 해외선 '사재기 열풍'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0.03.13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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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더마켓>

12일 오후 2시쯤 롯데마트 서울역점 식품매장.

 WHO(세계보건기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대유행)’을 선언한 이날 롯데마트는 해외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벌어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매장엔 생필품이 가득하고, 고객은 많지 않았다. 간간히 일부 고객이 묶음 포장된 라면과 가정간편식(HMR) 등 생필품을 카트에 담을 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부 김미숙(34)씨는 “늘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요즘은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래서 주말까지 가족들이 먹을 가정간편식과 라면 등을 샀다”며 들어 보였다. 생수와 라면 등을 카트에 가득 담은 김봉식(63)씨는 “평소에는 별생각 없다가 서울에서 확진자가 크게 늘었다는 뉴스를 보고 (이렇게) 생필품을 챙기게 됐다”고 불안해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일부 생필품 판매가 늘고 있다. 방역을 위해 마트가 임시로 문을 닫거나 특정 지역을 봉쇄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하는 고객들 일부의 발길이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해외에서처럼 ‘싹쓸이’식 사재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재난에 대비하는 성숙된 소비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마트 홍보실 이창균 수석은 “국민들이 과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신종플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에서 터득한 학습효과 덕분인지 대량 사재기는 없다” 며 “최근 생필품 판매가 는 것은 외식을 자제하고 집밥을 먹는 가정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비생활 문화는 수치에서 잘 드러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된 2월19∼3월10일 이마트의 주요 생필품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라면은 45.7, 즉석밥은 31.6, 생수는 16가 증가했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라면은 45.4, 즉석밥은 43.2, 생수는 9.4 판매가 늘었다.

라면과 생수 제조사인 농심의 신장률도 대형마트와 비슷하다. 농심 관계자는 “2월19∼3월10일 사이 라면과 백산수의 공장 출고량과 생산량이 전년 동기대비 30가량 증가했다”며 “이는 유통사들의 발주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생필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SSG닷컴이 2월19∼3월10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 식품 카테고리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간 대비 108.5 증가했다. 이어 생수 132.8, 채소류 141.2, 홍삼·비타민 등 건강식품 98.5 등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또 간편식품인 밀키트 1347.2, 통조림 220.8, 라면 153.3, 즉석밥 124.7, 쌀 106 등 전 품목에서 크게 늘었다.

 이 같이 오프라인 업태보다 온라인쇼핑 매출이 급증한 것은 코로나19의 감염 전파력이 강해 소비자들이 외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사재기가 없고, 오히려 소비자들이 온라인쇼핑 창구를 통해 차분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택원 SSG닷컴 영업본부장은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우려로 소비자들이 온라인몰 비대면 쇼핑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배송을 위한 생필품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생팔품 품귀 현상에 대해 유통업계 직원들은 “생필품 수요가 급증한 건 맞지만 제조사들이나 유통업체에서 이를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아직은 재고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공급 부족 우려를 일축했다.

한편 해외에서는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BBC방송은 11일(현지시간)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재기(panic buying) 열풍이 불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각국 정부는 사재기가 필요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미 코로나19에 대한 극심한 공포에 잠식당한 시민들은 마스크와 손소독제 뿐 아니라 휴지·청소용품 등 생필품부터 설탕, 밀가루, 파스타, 계란 등 식료품까지 대량 구매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장 먼저 사재기 열풍이 시작된 곳은 중국과 가까운 홍콩이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설명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1월부터 사재기를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재택근무 등 조처가 시작되자 만일에 대비해 최소 일주일치 식량과 생필품 등을 비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기에 중국의 공장이 멈출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져나갔고, 대부분 중국에서 공산품을 수입하는 홍콩에서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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