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별난 소주회사 '괴짜 회장님'… "행복은 몸에서" 건강 전도사로
[인터뷰] 별난 소주회사 '괴짜 회장님'… "행복은 몸에서" 건강 전도사로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0.08.20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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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을 만나다 보면 별별 인간상(像)을 경험한다. ‘한우물’을 파며 자수성가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두루두루 인맥을 쌓으며 폭풍 성장하는 이들도 있다. 회사의 일차적 목표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니 대개 기업인들은 조직을 키우고 임직원을 관리하는 데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하지만 매출 성장은 물론 늘 새로운 도전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는 ‘괴짜 경영인’도 있다. 조웅래(61) 맥키스컴퍼니(구 선양소주) 회장을 개인적으로 ‘괴짜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별난 소주회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황톳길을 만들고, 지역 곳곳 음악회를 열고, 꾸준히 지역청년 지원까지∼ 와∼ 별 일 다하네요∼”

TV와 유선방송 채널에서 접하는 맥키스컴퍼니 광고 내레이션이다. 소주를 만들어 파는 회사가 전국 유일의 맨발 축제를 주최하고 성악가들을 숲 속으로 불러 음악회를 연다. 한겨울에 웃통을 벗고 뛰는 ‘맨몸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정말 별의별 일을 다한다.

 조 회장은 경북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그는 2004년 잘나가던 정보기술(IT) 사업을 접고, 대전·세종과 충청권이 기반인 선양소주를 인수했다. 지역 연고도 없고 ‘주당’이라는 것 말고는 딱히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소주 회사에 IT사업에서 번 돈을 털어넣으니 주변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했다. 지역 소주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만의 역발상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 대전 계족산 14.5㎞ 임도에 황톳길을 조성했다. 부드러운 황토 위에서 진행하는 ‘맨발걷기’는 전국적인 힐링 콘텐츠로 거듭났다.

계족산황톳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3회 연속 선정되는 등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맨발걷기의 명소가 됐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뻔뻔한 클래식’이라는 무료 음악공연도 매주(토·일요일) 연다. 교도소, 군부대, 사회복지시설, 서해안 섬마을 등 문화 소외지역들을 돌며 ‘찾아가는 힐링 음악회’도 진행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조 회장은 ‘2019 한국메세나대회’에서 올해의 메세나인상을 받았다.

‘괴짜 회장님’의 근황이 궁금해 지난 3일 오전 대전 계족산황톳길을 찾았다.

벙거지 모자에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있는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인사를 건네자 다짜고짜 “운동 좀 합시다. 따라 오세요”라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쫓아 걷다 보니 얼떨결에 1시간가량 황톳길을 걸었다. 환갑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빨랐고 오르막길에서도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비결을 묻자 “‘몸이 답이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행복은 몸에서, 건강에서 나오죠. 국민 모두가 황톳길을 밟으며 건강하면 좋겠습니다.”

―성공한 벤처인이 소주 사업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1990년대 ‘삐삐(무선호출기)’가 유행하던 시절 통화연결음, 벨소리 등 전화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IT벤처기업인 ‘700-5425’를 창업해 운영했다. 음악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서비스였다. IT 사업을 하다 주류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술 사업 경험도 없고 지역 연고도 없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좋은 제품을 알리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많은 분들이 사랑해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계족산 황톳길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2006년 지인들과 함께 계족산 임도를 걸었다. 일행 중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걸었는데 그날 밤 숙면을 취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이 좋은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돌밭을 갈아 엎고 황톳길을 만들게 됐다. 15년째 황토를 깔고, 뒤집고, 물을 뿌리며 관리해 오는데 해마다 2000여의 황토를 쓴다. 황톳길을 관리하는 데만 매년 10억원 정도 들어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더라. 그래도 ‘정성이 가득하면 행운도 오는 법’이다.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3회 연속 선정됐고, 2019년에는 전국 걷기 좋은 길 8위에 올랐다.”

―뻔뻔(funfun)한 클래식은 대전의 명물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황톳길 맨발체험을 즐기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숲속음악회를 열게 됐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주말 산에서 공연을 진행한다. 주중에는 문화 소외계층 등을 찾아 ‘찾아가는 힐링 음악회’를 연다. 이렇게 문화 나눔을 실천한 지가 14년이나 됐다. 그동안 공연에 참여한 관람객만 7만명이 넘는다. 처음에는 황량했던 돌산이 촉촉한 황톳길로 바뀌고 뻔뻔한 클래식과 같은 문화 공간으로 바뀌니 보람이 컸다. 이곳을 찾아준 많은 이들의 덕분이다.”

―맨몸 마라톤 대회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

“새해 첫날 새로운 각오를 다지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이벤트다. 1월 1일 11시 11분 11초에 출발하는데, 2015년 1월 직원들과 함께 갑천변을 달린 게 계기가 됐다. 웃통을 벗고 달려 보니 갈대 숲과 맑은 물길 등 자연과 도시의 풍광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좋겠다 싶어 대회를 열었다. 올해가 벌써 5회째가 된다.”

―지역에서는 ‘황톳길 아저씨’ ‘황톳길 작업반장’ 등으로 불리는데 지역사회와도 소통이 꽤 깊은 것 같다.

“지난해 ‘지역사랑 장학캠페인’ 시작을 선언하고 대전·세종·충남지역 23개 자치단체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회사에서 생산하는 ‘이제우린’ 소주 1병당 5원씩 적립해 이듬해 초 기탁하는 형식이다. 10년간 40억원 기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 2월 대전시를 시작으로 6월까지 모든 지역에 3억800여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라는 뜻을 담은 ‘이제우린’의 네이밍처럼 지역소주를 만드는 기업과 지역소주를 사랑하는 소비자가 지역의 미래를 위해 함께 기부하자는 취지다.”

―소주 회사가 정말 별의별 일 다하는군요.

“나만 잘사는 시대는 지났다. 향토기업은 지역사회와 같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지역민이 있어야 지역기업도 있고, 그런 지역민을 위해 지역 기업이 별의별 일을 다해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자연, 또 사람과 문화예술까지 이어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상생하는 것이 모두가 잘살고 행복한 일이다.”

―한국메세나인상을 수상했는데.

 “주류 회사를 운영하면서 힐링과 소통의 공간인 황톳길을 조성하고, 맨발 축제와 대전 맨몸마라톤대회 개최, 뻔뻔(funfun)한 클래식·숲속 음악회 무료 공연, 지역민 건강증진 프로그램(에코힐링 캠페인) 등 ‘상생과 나눔’이라는 경영철학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해 상을 주신 것 같다. 아울러 충청권에서는 유일하게 우수 지역사회공헌기업에 선정되어 보건복지부장관상도 수상했다. 별의별 일을 다하다 보니 상도 많이 받은 것 같다.”

메세나인상은 개인이나 기업이 사회 문화, 예술, 경제 활동에 기여한 공로를 격려하는 상으로 1년에 1명 선정해 수상한다. 한국메세나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동 선정하는데 지역 향토기업인으로는 조 회장이 최초 수상했다.

―마라톤 마니아라고 알고 있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20년 됐고 42.195㎞ 풀코스를 79회 완주했다. 마라톤은 신이 내려준 최고의 보약이다. ‘몸이 답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과의 첫 시작도 운동으로 시작한다.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먹고 싶은 것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입고 싶은 옷을 입기 위해, 세 번째로는 밝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마라톤을 생활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돼 주변에 적극 권유한다. 그래서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신입직원이 수습딱지를 떼고 정규직 발령을 받을 때 ‘면수습 마라톤’을 시행한다. 10㎞를 완주해야 정직원이 된다. 목표를 세우고 잘 준비해야 한다는 마라톤의 교훈을 전달하고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돼 16년째 운영 중이다. 공식마라톤대회에 참석하면 ㎞당 1만원의 완주수당을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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