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5년째 전통김치 연구·개발 외길인생 걸어온 '김치대통령'
[인터뷰] 35년째 전통김치 연구·개발 외길인생 걸어온 '김치대통령'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0.08.20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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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파문이 장기화하면서 인기를 끄는 식품이 있다. 한국인 밥상에 매일 오르는 김치다. 최근 프랑스 연구진은 한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적은 이유가 발효식품인 김치를 즐겨 먹는 식습관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김치 수출이 급증세라고 하니 톡톡히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셈이다. 김치 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김치명장 1호’, ‘식품명장 1호’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순자(66) 한성식품 회장이다. 올해로 35년째 우리나라 전통김치를 연구·개발하는 김 회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김치대통령’으로 불린다. 김 회장이야말로 김치의 면역력 강화 효과를 직접 체험했다. 그가 김치에 빠지게 된 연유다.

“어릴 때부터 온몸에 두드러기와 수포가 생기고 수포가 터지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아픔이 반복됐어요. 병명도 모른 채 알레르기 체질에 좋다는 것은 다 먹어보고 치료도 해봤는데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런 김 회장에 건강을 되찾게 해준 ‘약’이 바로 김치였다.

“반찬을 먹을 수 없어 밥과 김치만 먹었더니 거짓말처럼 두드러기가 사라졌어요. 유산균이 풍부하고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김치 덕분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의 김치 담그는 것을 돕는 등 김치 삼매경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전국 8도 김치에 관해 공부하며 자신만의 레시피를 완성해 나갔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김 회장에게 김치와 뗄 수 없는 운명이 찾아왔다. 그의 나이 31세 때다.

“친구들과 모처럼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우연히 주방에서 ‘김치가 맛이 없어 고객들의 불만이 많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며칠 후 배추김치를 담가 구매팀을 찾아갔더니 김치맛을 보고는 견적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는 “누가 김치를 사 먹느냐”고 말리는 이들이 많았다. 마트나 슈퍼에서 김치를 판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다.

김 회장은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1986년 모든 재산을 털어 서울 대림동에 70평짜리 공장을 인수해 김치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규정 등을 모두 갖추고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현재의 ‘김순자표 김치’는 이렇게 탄생했다.

김 회장이 이끄는 한성식품은 국내 주요 특급관광호텔에 한성김치를 납품하고 있다. 한성식품은 1986아시안게임, 1988서울올림픽, 2002부산아시안게임, 2018평창동계올림픽 등 국제행사 때마다 정부로부터 김치 공급업체로 지정돼 김치를 세계에 알려왔다. 현재는 세계 28개국에 김치를 수출하고 있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4일 경기도 부천시에 자리 잡은 한성식품 본사를 방문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김 회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1986년 직원 1명과 창업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김치 사업을 시작할 때는 포장김치 판매를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죠. 주변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김치사랑’이 남달랐어요. 직원 1명과 1986년 한성식품을 창업했는데 김치가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순조롭게 김치 납품이 시작됐죠. 전통김치 80종을 비롯해 웰빙김치 10종, 특허김치 16종, 등 무려 175종을 상품화했습니다. 호텔, 레스토랑 등에 주로 납품했는데 이제는 관공서, 병원, 케이터링 업체, 학교급식, 홈쇼핑 등에도 김치를 납품하고 있어요.”

-30여년 전만 해도 여성 혼자 회사를 이끄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한숨을 쉬면서) 그때만 해도 여자가 무슨 사업을 하냐고 무시하던 시대입니다. 특히 김치 사업은 하늘과 같이하는 사업입니다. 작황 부진, 태풍, 폭설, 폭염, 가뭄 등으로 원료 파동이 많아 안정적으로 원료를 조달할 수 없어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죠. 당시에는 자동화 시설이 보급되지 않아 혼자 밤새 김치를 담가 아침에 배송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동안 회사가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도 저를 믿고 지금까지 따라온 직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현재 한성식품은 400여명의 직원 중 20~30년 이상 장기근속자만 30명이 넘습니다.”

-현재 특허가 국내 27건, 해외 1건 등 총 28건이라고 하던데요.

“전통김치뿐만 아니라 오색의 천연야채 빛깔로 기존 김치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 다양한 퓨전김치를 개발했어요. 짜지 않고 맵지 않은 김치인데 ‘깻잎양배추말이김치(특허 제0338567호)’는 하얀 양배추와 붉은 적채가 어우러져 익을수록 적채에서 우러나오는 보랏빛의 태극모양이 특징인 퓨전 웰빙 김치입니다. ‘치자미역말이김치(특허 제10-1336812호)’는 미역과 당근, 청·홍 피망의 상큼한 향과 아삭한 식감이 좋습니다. 김치에 부족하기 쉬운 요오드 성분을 미역을 넣어 보완하고 치자의 따뜻한 성분까지 더했는데 접시에 담으면 마치 한 송이 꽃처럼 예뻐서 서양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이외에 ‘미니를 보쌈김치’, ‘미역말이김치’, ‘브로콜리김치’ 등 다양한 재료와 제조법을 사용해 색다른 맛을 자랑하는 특허김치들이 있습니다.”

-한성식품 김치에 쓰이는 농산물은 100 국내산인가요.

 “당연히 100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토양에서 나는 싱싱하고 질 좋은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야 전통김치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죠. 김치 생산도 김치를 더욱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김치의 핵심인 배추는 산지 계약재배를 통해 싱싱한 최상품을 선별해 사용하고 마늘, 고춧가루, 젓갈 등 양념재료들도 전국 산지에서 최상품만 사용합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김치 공급을 위해 HACCP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HACCP 인증, ISO22000, 전통식품, GAP, 할랄인증, 비건 인증을 받아 수출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김순자표’ 김치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결론부터 말하면 누구에게나 입맛에 맞는 맛있는 김치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김치 맛이 다 달라서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가 정말 힘듭니다. 오죽하면 중간에 김치사업을 접겠다고 했을까요. 1987년도로 기억됩니다. 석 달 정도 밤을 꼬박 새우면서 누구나 좋아하는 레시피를 개발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짜지 않으면서 젓갈맛도 안 나는 한성김치를 개발하게 된 거죠. 특히 한성김치는 갓 버무려도 맛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은 맛을 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익으면 더욱 깊은 맛 나요” 김순자 회장은 한성김치에 대해 “자극적이지 않고, 짜지 않으면서 젓갈맛도 안 나는 맛있는 김치다. 갓 버무려도 맛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은 맛을 낸다”고 소개했다. 이제원 기자 
-마트나, 슈퍼, 편의점에는 왜 한성김치가 없나요.

 “사업 초기에는 한성김치를 유통매장에 입점해 판매했으나 인건비 상승 및 가격 경쟁력 확보가 어려워 안타깝게도 오프라인 매장은 철수했습니다. 특히 대기업들은 김치에 콩나물과 두부를 얹어 주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데 우리는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고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TV홈쇼핑을 비롯한 온라인 공식 쇼핑몰 한성몰과 오픈마켓, 소셜커머스 등을 통해 소비자와 만나고 있습니다.”

-‘김순자 명인 김치 테마파크’는 어떤 일을 하나요?

“김순자 명인 김치 테마파크는 2012년 3월에 개관하여 4월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으로부터 김치교육기관 1호로 지정받았습니다. 김치 체험 및 김치 담그기 체험, 외국인 과정, 어린이 과정, 진로 체험 등을 운영하여 김치의 효능과 우수성, 김치문화까지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김치연구소에서는 주로 새로운 김치 메뉴를 개발하나요.

 “연구소장 외에 6명이 일하는데 다양한 김치연구를 합니다. 세계김치연구소와 함께 유산균 스타터 접종을 통해 김치의 품질유지기간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해당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유산균 스타터 균주 우점율 분석을 통한 김치 품질관리 기술’ 개발로 농림식품신기술(NET) 인증과 2019 국가연구개발 우수과제 100선에 선정됐습니다. 현재는 김치 골마지 생성 억제 기술을 적용한 김치 제품 개발과 막김치 자동화 생산설비의 규모화에 대한 연구과제를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19로 김치 효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여행관광·외식업계, 오프라인 매장, 면세점, 학교급식 등이 위축돼 처음에는 매출 감소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부활동 자제로 ‘집밥’을 먹는 가정이 늘면서 온라인 구매 주문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밥을 먹다 보니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코로나 사태 이후 서로 직접 접촉하지 않는 비대면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던데 저희도 인터넷 채널을 넓혀서 소비자들과 더 자주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김치 수출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더 반응이 좋던가요.

“현재 약 28개국으로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수출국이 대만, 호주, 일본, 미주, 유럽, 동남아, 중동지역까지 광범위합니다. 이 중 호주는 코스트코에 수출하고 있는데, 현지인 99가 저희 한성김치를 구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국민이나 교포들이 많이 구매했지만, 점점 현지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한국인이 코로나 감염의 치사율이 낮은 게 김치 영향이란 해외연구 결과도 나왔으니 수출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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