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맞벌이하며 힘들었던 장보기… 반짝 아이디어로 창업 '대박'
[인터뷰] 맞벌이하며 힘들었던 장보기… 반짝 아이디어로 창업 '대박'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0.09.29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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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주문한 두부와 콩나물을 아침식사로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2015년 5월, 주부들의 상상이 현실이 됐다. 밤 11시까지만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까지 신선식품을 집 앞에 배송해 주는 ‘샛별배송’에 주부들은 환호했다. 장보기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컬리는 이렇게 새벽시장을 열었다. 대한민국 새벽시장을 깨운 이는 김슬아(38) 마켓컬리 대표다.

그의 독특한 이력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민족사관고를 수석 입학한 뒤 미국으로 유학 가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웰즐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골드만삭스와 맥킨지 홍콩지사, 베인앤컴퍼니코리아 등에서 금융 관련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다. 이런 그가 왜 유통업에 뛰어들었을까.

“퇴근 후 매일 장을 보는 게 불가능했죠. 주말에 가서 1주일치 장을 볼 수도 없고요. 온라인 주문하면 2∼3일 뒤 도착해 과일과 채소의 신선도가 크게 떨어졌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신선한 식재료를 받아보면 좋겠는데….”

김 대표는 32살에 자신의 꿈을 창업으로 연결했다. 그는 창업 전에도 깐깐한 맞벌이 주부였다. 주스용 케일 하나를 살 때도 직접 재배농가를 찾아 직거래할 만큼 ‘잘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마켓컬리의 모토는 명확하다. 프리미엄 식자재를 합리적인 가격에 빠르게 배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상품 입고부터 배송까지 유통 전 과정을 냉장 상태로 유지하는 ‘풀콜드(full cold)’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켓컬리에 신규 입점하는 모든 상품은 담당 MD는 물론 김 대표도 직접 참여하는 ‘상품위원회’에서 70여 가지 기준이 적용된 깐깐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마켓컬리 상품이 ‘가성비’가 좋다고 정평이 난 이유다. 현재 마켓컬리 회원은 550만명이다. 창업 5년 만에 국민 10명 중 1명이 ‘샛별배송’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마켓컬리는 스타트업계는 물론 유통업계에서도 주목 대상이다. 마켓컬리 운영사인 컬리는 지난 5월 벤처투자사들로부터 2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이번 투자를 합쳐 누적 투자유치 금액이 4200억원에 이른다. 아직은 영업손실이 크다. 물류센터 확보와 데이터분석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적잖은 비용이 투입됐다. 마켓컬리는 내부적으로 2∼3년 내 흑자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대표는 “이익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며 “지금까지 소비자의 습관을 바꾸는 일에 돈을 썼다면, 앞으로는 서비스 완성도를 높여 가며 온라인 장보기의 양적·질적 성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 마켓컬리에 원하는 것은 ‘신뢰’와 ‘품질’”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267명이던 지난 5일 서울 신사동에 자리 잡은 마켓컬리 본사를 방문했다. 청바지와 흰색 반팔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한 그의 첫 인상은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김슬아 대표 맞나요?”로 시작됐다.


-먼저 코로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요즘 주문이 폭주해 품목에 따라 품절사태가 발생하는데 어떻게 대처하나요.

“당장의 매출만 생각하면 일단 주문은 받고 배송은 하루 이틀 미루는 식으로 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는 고객이 주문한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배송한다는 원칙이 있고, 이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문량이 꽉 찬 제품은 바로 품절 처리하고, 고객들에겐 양해를 구하는 공지를 띄웁니다. 매출보다는 우리가 창립 이후 지난 5년간 지켜온 약속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해 방역대책에 대한 고민도 클 것 같습니다.

“정부의 방역 가이드를 철저히 따르고 있어요. 그러나 코로나 특성상 아무리 조심해도 (바이러스가) 외부에서 유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도 확진자가 나왔죠. 많이 당황했지만, 방역당국 지침대로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고객과 언론에 빠르게 알린 후, 이후 상황도 매일 업데이트해 투명하게 공유했습니다. 솔직하고 빠른 위기 대응으로 추가 확진자 발생 없이 물류센터를 조기 정상화했습니다.”

-대표님은 사과를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물류센터 확진자가 1명 생겼을 때도 그랬고, 이슈때마다 왜 그리 자주 사과를 하시나요.

“제가 사과를 자주 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생기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하잖아요. 일단 이런 점에서 사과를 드리고, 더 열심히 방역하겠다고 진정성을 말씀드리면 마음을 열어 주실 것 같아서요. 식품을 주로 취급하는 유통업은 여러 가지 이슈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하지 않지요. 하지만 저는 항상 소비자 입장에서 결정을 내려요. 예를 들어, 상품에 1만 변질이 발생해도 전체 구매자에게 선제적으로 연락해 환불을 한 뒤, 그 이유가 뭔지 끝까지 확인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게 저의 기본원칙입니다.”

-평소 많이 듣는 질문이겠지만 골드만삭스, 맥킨지 등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마켓컬리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사소합니다. 맞벌이 부부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장보기에 대한 고민이 그 시작이죠. 직장인이 퇴근 후 매일 장을 본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2∼3일 뒤 낮 시간에 도착해 몇 시간 동안 방치되기 일쑤고요. 주위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 부분을 공략하면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죠. 이러한 고민을 하다 보니 좋은 품질의 식재료를 매일 배송해 주는 아이템이 떠올라 창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특히 배송도 하루를 준비하는 아침에 받아볼 수 있다면 누구나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할 정도로 커진 데는 마켓컬리 성공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마켓컬리만의 경쟁력을 꼽는다면.

“일반 마트의 경우 상품이 산지에서 매대에 진열되기까지 평균 48시간 정도 걸립니다. 100 신선한 식품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죠. 저희는 신선도를 지키기 위해 골든타임을 24시간으로 봤습니다. 이를 위해 모든 상품을 직접 구매해 품질을 책임지고, 산지에서 고객 집 앞까지 신선하게 배송될 수 있도록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풀콜드체인 배송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풀콜드체인은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 스타트업인 마켓컬리가 시도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상품의 품질이 먼저라는 원칙 아래 과감히 도전했고, 결국 ‘신선식품을 신선하게 배송한다’는 어려운 숙제를 해결했습니다.”

-마켓컬리는 입점 상품을 선별할 때 깐깐하게 고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고객들이 마켓컬리에 원하는 것은 단순히 ‘신선한 식품’이 아닌, 믿고 구입할 수 있는 ‘높은 품질’입니다. 마켓컬리가 항상 최상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전 직원이 노력하는 이유죠. 매주 열리는 상품위원회가 대표적인데요, 가격부터 품질까지 70여개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 판매하죠. 상품위원회에서도 만장일치를 받아야 최종적으로 판매가 가능합니다. 상품위원회는 마켓컬리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품질을 검증하는 마지막 단계인 만큼 가장 중요한 일정이죠. 모든 상품의 산지를 방문해 생산자와 만난 후 내부에서 또다시 토론을 하는 회사는 우리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켓컬리는 직매입 구조를 택하고 있죠. 기업 부담이 큰 직매입 방식을 택한 이유가 뭔가요.

“온라인 시장에서 100 직매입 구조는 흔치 않아요.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회사가 큰 손해를 입는 구조인 데다 신선식품 특성상 유통기한이 짧아 부담이 크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공급사들과 상생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만큼 과감히 100% 직매입 구조를 선택했습니다. 재고와 반품 부담을 던 공급사들이 생산과 개발에만 집중해 상품의 퀄리티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한 거죠. 생산자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하고, 적정한 대가는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미리 구입해 놓았는데 팔리지 않거나 물량을 너무 적게 구입해 조기 품절 처리되는 사례가 나올 텐데.

 “수요 예측을 잘못하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죠. 그래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매출 및 물류 예측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창업 초기부터 투자를 많이 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켓컬리는 유통사업을 하는 첨단 IT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마켓컬리 직원들은 입사하면 엑셀 교육부터 받습니다. 항상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모든 업무를 데이터화하는 게 중요하고 직원들도 데이터를 읽고 수요를 예측하는 데 익숙해져야 합니다.”

-마켓컬리는 생각보다 상품 가지 수가 적은 편인데 왜 그런가요.

“우리 상품을 소개할 때 ‘가장 싼 제품’ 대신 ‘가장 뛰어난 제품’이라고 소개합니다. 상품을 고를 때도 많이 팔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 제품을 왜 팔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죠. 이 같은 원칙에 따라 무작정 상품 수를 늘리기보다는 우리의 기준과 가치에 합당한 제품을 선보이는 데 중점을 둡니다. 현재도 각 상품군당 퀄리티가 가장 우수한 3∼4개 상품만 선보입니다. 마켓컬리가 선별한 상품에 대해 고객이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만족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마켓컬리가 추구하는 가치죠.”

-최근 비식품류가 많이 늘어는데 상품군을 넓힌 이유가 있나요.

“비식품류 상품이 늘어나게 된 것은 마켓컬리가 검증한 상품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된 고객들의 요청이 이어졌기 때문이죠. 고객들은 마켓컬리가 채소, 과일, 육류 등을 검증하듯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들도 검증해 달라고 많은 요청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고객 니즈를 반영하기 위해 토스트기, 후라이팬, 에어프라이기 등과 같은 주방도구와 휴지, 기저귀, 세제 등 생필품까지 살펴보게 됐죠. 현재는 제품 종류를 더욱 넓혀 뷰티가전, 유아용품, 반려동물 간식 등까지 다룹니다. 물론 비식품류 제품 또한 신선식품과 마찬가지로 매주 열리는 상품위원회의 기준을 통과한 제품만 판매되며, 100 직매입 과정을 통해 운영하는 중입니다.”

-상품과 관련해서 올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켓컬리가 지난 5년간 쌓아온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 PB(Private Brand) 브랜드 ‘컬리스’ 확장에 힘을 쓰고 있어요. ‘컬리스’의 목표는 신뢰 가능한 상품을 최적의 가격으로 선보여 고객의 만족과 협력사의 수익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겁니다. 예컨대, 지난 2월 첫선을 보인 ‘컬리스 동물복지 우유’는 국내 최초로 착유일을 기재한 우유입니다. 동물복지, 무항생제, HACCP 시설 농가 인증을 받은 목장에서 착유한 신선한 원유만을 사용한 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었죠. 예상대로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출시 3개월 만에 단일 우유 상품 1위에 올랐고, 현재도 우유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어요. 컬리스는 현재 통밀식빵, 모닝롤, 돈육햄 등으로 확장한 상태이며 꾸준히 신제품을 내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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