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자판기로 명품 사고팔고...비대면 중고거래의 진화
[기획] 자판기로 명품 사고팔고...비대면 중고거래의 진화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0.12.25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40대 윤모씨는 올해 들어 집 근처 여의도 IFC몰에 있는 중고 거래 자판기를 자주 이용한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주변에서 선물받고 미처 사용하지 못한 육아용품들을 주로 판다. 최근엔 유아용 털목도리와 털모자, 스마트폰 터치장갑을 넣고 왔는데 사나흘 안에 팔렸다는 알림이 왔다. 윤씨는 “대면 거래는 구매자와 만날 시간·장소를 맞춰야 해서 불편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함도 있었다”며 “육아하다가 내가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가서 맡길 수 있으니 한 달에 8~9번은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AK플라자 분당점 2층에 독특한 자판기가 들어섰다. '구매' 혹은 '판매'를 선택할 수 있는 스크린 옆으로 안이 훤히 비치는 투명박스들이 나란히 배치됐다. 박스 안에는 구찌, 루이비통, 샤넬 등 고가의 명품 가방이 진열돼 있다. 2층 의류 매장을 찾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화려한 명품 가방에 머문다. 이는 비대면 중고거래 수요에 맞춰 AK플라자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중고명품 자판기'다. 판매자가 박스에 물건을 담고 전화번호와 원하는 가격 등을 입력하면 이후 구매자가 자판기에서 물건을 뽑아간다. 자판기는 6개월간 운영한 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영향을 받아, 대면 거래가 필수였던 중고거래에도 '비대면'이 대세가 되고 있다. 최근엔 각종 인공지능(AI) 기술과 새로운 거래모델까지 장착한 비대면 중고거래가 뜨는 중이다. 어느덧 하나의 '산업'으로 불릴만큼 급성장한 중고거래 시장이 비대면 엔진으로 다시 한번 도약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08년 4조원대에서 올해 약 20조원대로 5배 급증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중고거래가 더 활발했다. 비대면 중고거래 플랫폼 '헬로마켓'이 18세 이상 남녀 25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6%가 지난해보다 중고거래 플랫폼 선호도가 상승했다고 답했다. 반면, 백화점·대형마트는 8%에 그쳤다. 판매자는 안 쓰는 물건을 팔아 여윳돈을 벌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흐름이다.

그간 중고 거래의 최대 약점은 '사기 위험'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는 직거래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고 거래에도 비대면이 각광 받는다. 헬로마켓 관계자는 "이전부터 개인정보 노출, 접촉 과정의 피로감 등으로 낯선 사람을 만나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었다"며 "최근 코로나19가 비대면 거래 욕구에 불을 지폈다"고 설명했다.

윤씨가 이용한 자판기는 ‘파라바라’라는 스타트업이 만들었다. 이 업체는 지난 7월부터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이나 쇼핑몰 등에 자판기를 설치했다. 판매자는 시간날 때 가서 팔 제품을 넣고 가격을 설정하면 끝이다. 구매자는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자판기에서 보고 마음에 들면 결제하고 찾아가면 된다.

구매자가 제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3일 후에 판매자에게 돈이 입금된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서로 누군지도 모른다. 김길준 파라바라 대표는 “20·3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며 “현재 수도권에 20곳 정도 설치됐는데 이달 안에 30곳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근마켓, 중고나라, 번개장터에 이어 업계 4위인 헬로마켓(모바일 월간 순이용자 120만명)은 지난 10월 대면 거래를 없애고 100% 비대면 거래로 승부수를 띄웠다. 헬로페이로 배송 확인 후 지급되는 안전결제와 편의점(현재는 CU만 가능) 이용 시 거리와 무게에 상관없이 배송비를 2000원으로 고정했다.

‘사기 위험’과 ‘배송비’라는 비대면 거래의 양대 걸림돌을 뛰어넘는다는 구상이다. 대면 거래가 보편적인 중고 거래 특성상 시행 초기 이용자가 줄어들 각오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12월 이용자 수는 약 120만명으로 지난 10월과 엇비슷했고, 비대면 거래는 30% 증가했다.

이후국 헬로마켓 대표는 “지금은 중고 거래도 비대면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라며 “비대면 거래가 더 안전하고 편하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땡큐마켓은 판매자가 육아용품을 올리면 전문 중고판매업자가 방문해 가격을 책정하고 수거까지 해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판매자 입장에선 포장·배송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땡큐마켓은 새 제품이나 다름없는 반품과 재고 이월 상품을 직매입해 팔기도 한다. 구매자는 검증된 중고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처럼 대면 없이 구매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