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민생' 말고 물가부터 잡아라
말로만 '민생' 말고 물가부터 잡아라
  • 더마켓
  • 승인 2021.08.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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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15일 경기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 채소 판매대 앞. 저녁 찬거리를 위해 장 보러 왔다는 주부 이미숙(42)씨는 시금치 가격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요리조리 시금치를 살펴보던 이씨는 결국 카트에 담지 못했다. 이씨는 “모처럼 시금치된장국을 끓이려 했는데 품질이나 신선도에 비해 가격이 비싸 오늘은 김칫국을 끓여야겠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마트의 시금치 1봉(200g)은 3980원, 깐대파(100g당 990원)는 1980원, 깐쪽파(100g당 1840원)는 3680원, 무 1개는 1980원이었다. 이씨는 “한 달 전과 비교해 채소류 가격이 40∼50% 오른 것 같다. 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오르니 장 보기 겁난다는 말이 실감 난다”고 했다.

 폭염에 인기가 많은 수박은 한 통에 3만원을 넘겼다. ‘수박값이 금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밥상에 자주 오르는 계란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가 지속되면서 반년째 안정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원유 가격 인상이 확정됨에 따라 유기업들은 조만간 우유 및 유제품 가격 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유지·설탕·포장재 등 각종 식품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지속하면서 원가 부담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면 가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재료비 인상으로 이어져 외식비가 오르는 등 여파가 작지 않다. 최근에는 외식비·영화관람료·택배비 등 개인 서비스요금까지 들썩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농축수산물 가격과 수급 안정을 위한 정부의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선제적으로 추석 대비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2일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8월 내내 민생 물가 안정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부 이씨처럼 소비자들은 정부의 물가 정책 효과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 통계만 보더라도 정부 정책의 허점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밥상물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를 기록했다. OECD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한국의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는 1년 전보다 7.3%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38개 OECD 회원국 중 터키와 호주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이고 국내 2분기 기준으로 봐도 10년 만의 최고치다.

 홍 부총리는 “계란값부터 잡겠다”고 호언했지만 당분간 물가는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지난 8일 강원 고성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하자 계란 파동에 이어 돼지고기 파동까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질 것이란 비관적 관측이 나오는 것도 우려스럽다.

 최대 명절인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날씨나 유가 탓만 하면서 물가 관리에 속수무책일 때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고 내년 대통령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민생 정치는 뒷전으로 밀릴까 걱정이다.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은 집값 폭등, 물가 상승 등 ‘연타’에 그로기 직전이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정부 시절 ‘MB 물가지수’ 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서민들의 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물가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위적 물가 정책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엄포’나 장관들의 ‘시장 시찰’ 같은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물가를 잡을 수는 없다. 재고 물량을 풀어 시장 수급을 조절해주고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병목현상’도 풀어야 한다.

식품업계 등 기업 관계자,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 기관들과의 ‘협치’도 필요하다. 금리 인상이나 유동성 회수 등 근본적 해법도 공론화할 시기다.

최근 한국은행이 시장에 금리인상 신호를 보내는 일이 잦아진 게 사실이다. 더 이상 실기하지 않아야 한다. 고삐 풀린 물가의 최대 피해자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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