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형마트 지으니, 시장 손님 늘었다…그래도 '20배 규제' 법안
[기획] 대형마트 지으니, 시장 손님 늘었다…그래도 '20배 규제' 법안
  • 이진숙 기자
  • 승인 2022.03.13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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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되면 시장에 와서 어묵먹고 인사하고 가는데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사람이 있어야죠, 사람이.” (21일, 경북 영주 중앙시장 상인)

최근 정치권에서 지방 복합쇼핑몰 유치 문제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면서 10년 넘게 이어져 온 유통산업 관련 규제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상공인과 대기업, 소비자가 모두 불만인 가운데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게 2010년 만들어진 ‘유통산업발전법’이다. 지역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전통시장 근처에 대형마트 입점을 제한한 이 법은 10년간 규제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돼 왔다. 핵심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이 △월 2회 문을 닫고 △0~10시엔 영업할 수 없게 한 조항이다.

◆소상공인 측 “경쟁력 갖출 때까지 영업제한 필요”

입점 자체도 쉽지 않다. 전통시장 반경 1㎞에 출점이 막힌데다 2013년부터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가 출점하려면 시장·군수·구청장 아래 협력업체와 납품업체·농어업인 등으로 구성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소상공인 측은 일단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도열 소상공인시장진흥협회 홍보실장은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유통 환경이 급변하고, 코로나로 힘들 때야말로 시장,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며 “소상공인들이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는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대형마트 영업제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온라인 앱과 배송 시스템 구축 예산 등 시대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트 쉬어도 시장 안 가요”

그렇다면 규제로 전통시장은 더 활성화했을까. 대한상공회의소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도입된 뒤 2019년까지 전통시장 등 전문소매점 매출은 7년간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소매업 매출 증가율(43.3%)은 물론 편의점(135.7%)이나 인터넷 쇼핑 등 무점포소매 증가율(121.7%)보다 한참 낮은 수치다. 대형마트 매출은 14% 감소했다. 시장점유율은 전문소매점이 40.7%에서 36.3%로, 대형마트가 14.5%에서 8.7%로 두 업태 모두 하락했다.

소비자 반응도 회의적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실시한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무 휴업제로 대형마트에 못 갈 경우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소비자는 8.3%에 그쳤다. 반면 ‘근처 슈퍼마켓을 이용한다(37.6%)’ ‘대형마트 영업일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28.1%)’는 답이 많았다. 김태윤 전경련 산업전략팀장은 “대형마트가 이미 서민들의 생필품 구입처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영업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프라 있는데 물류센터 다시 만들어”

국내 유통기업들은 이런 규제들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합하지 않아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단적으로 대형마트들은 지난 2015년부터 쿠팡과 마켓컬리가 새벽배송을 도입해 경쟁이 본격화했는데도 ‘새벽(0~10시)엔 영업할 수 없다’는 규제에 발이 묶였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매장마다 대형 냉장고와 창고 등 배송 인프라가 있었지만 새벽배송을 위해 별도로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만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배송 수요가 폭증하자 국내 대형마트와 온라인 기반 업체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반면 경쟁업체인 미국의 코스트코, 스웨덴의 이케아 등은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출점부터 영업까지 규제를 비껴갔다. 코스트코 코리아는 코로나19가 터진 2019년 회계연도(2019년 9월~2020년 8월)에도 영업이익이 1429억원으로 6.2%나 증가했다.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의 영업이익이 2020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98% 급감한 10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대조된다.

◆규제지역 20㎞로 늘리는 법안도

대형유통 관련 규제는 강화되는 분위기다.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동주·김정호·홍익표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약 10건이 계류 중이다. 이 중엔 규제 대상을 기존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에서 복합쇼핑몰·백화점·면세점 등으로 확대하고, 규제 범위도 전통시장과 상점가 반경 1㎞에서 20㎞로 확대하는 법안이 있다. 아예 규제의 시한을 영구화하고, 입점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국에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반경 20㎞를 그리면 쇼핑몰이 들어설 수 있는 지역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상권 살아야 시장도 신다”

전문가들은 지역상인을 살리기 위해선 ‘갈라놓기’가 아닌 ‘붙여놓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소비자와 업계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이념에 따른 편가르기식 접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남대 총장을 지내고 미국·일본 등에서 전통시장 활성방안을 연구해 온 이덕훈 한국전통시장학회 회장은 “대형 쇼핑몰과 시장을 멀리 떨어뜨려 놓으니 사람들이 모두 대형 쇼핑몰로 가고 시장에 더 손님이 없어진다”며 “외국처럼 원도심(구도심)과 신도심을 묶어 사람들이 오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건은 새로운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다. 지역경제 살리기가 빠진 전통시장 활성화는 공허한 얘기”라고 강조했다. 상권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2017년 신용카드 사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선 뒤 오히려 전통시장 고객이 늘어났다. 전통시장 고객을 100명으로 볼 때, 대형마트로 이동하는 전통시장 고객은 4.9명인데 비해 대형마트를 이용하면서 시장을 함께 이용하는 신규 고객은 14.6명이나 됐다.

신동엽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정치권이 산업을 대기업-중소기업, 강자-약자로 나누고 시대의 변화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이라며 “산업화 시대의 이분법식 통제에서 벗어나 공동의 게임의 규칙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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