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국 4만개 편의점...모든 것을 제공하는 시설로 탈바꿈
[기획] 전국 4만개 편의점...모든 것을 제공하는 시설로 탈바꿈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1.03.01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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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박상현(31)씨는 아침 출근길에 전동킥보드를 빌리는 것이 일상이 됐다. 차가 밀리는 시간대에도 지각할 걱정 없이 출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동킥보드를 이용하고 나서 출퇴근 시간은 30분에서 15분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씨가 전동킥보드를 이용하게 된 것은 지난해 집 근처 편의점에 주차 스테이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일일이 위치를 검색하지 않아도 편의점에 가기만 하면 완전히 충전된 전동킥보드가 대기하고 있다. 회사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쉽게 반납할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코로나19 불안 속에서 대중교통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편의점이 한국에 상륙한 지 30여 년 만에 단순히 생필품을 파는 ‘24시간 구멍가게’에서 생활밀착형 편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복합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4만개가 넘는 점포 숫자를 무기로 전국 웬만한 지역을 커버하는 ‘근린 유통 매장’이라는 특징에 맞춰 인근 주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시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최근 쇼핑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며 백화점과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다양한 이색 서비스로 무장한 편의점은 오히려 승승장구하면서 소비자들과 접점을 넓히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1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1989년 국내 1호 편의점(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이 문을 연 당시 소매점 역할만 했던 편의점 서비스 규모는 현재 30여 개로 늘었다. 1997년 GS25 전신인 LG25와 훼미리마트(현재 CU)가 전기료 등 공공요금 납부 서비스를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부터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매장에 도입하며 편의점은 간단한 은행 업무까지 처리 가능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2000년대부터는 편의점의 물류 기능을 살린 택배 서비스도 시작했다. 최근에는 전동킥보드 거치대와 '쏘카존'까지 갖춘 공유 모빌리티 거점에다 세탁물 수거와 배달, 즉석 우동까지 파는 간이식당,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생활 속 미술관 역할까지 추가한 매장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편의점이 단순한 소매점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핵심은 시대에 맞는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는 것이다.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오프라인 소매 매장이란 특징을 살려 각종 생활 서비스의 구심점이 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예컨대 GS25는 지난해 9월 단거리 이동수단 공유 플랫폼 '고고씽'과 제휴해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점포 외부에 주차 공간을 마련해 전동킥보드가 보도에 방치되는 문제를 개선했다.

1인 가구가 세탁소를 찾기 어렵다는 고충도 편의점의 신사업으로 이어졌다. GS25는 2017년부터 세탁 서비스 '리화이트'와 함께 고객이 편의점에 맡긴 세탁물을 지역 세탁소에 연결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식당도 편의점이 대체했다. 즉석국수와 우동까지 웬만한 식당 못지않은 먹거리로 무장한 매장이 등장해서다.

최근 세븐일레븐이 선보인 ‘푸드드림’ 매장은 일반 점포보다 2배 넓은 132㎡ 규모 매장에서 뜨끈한 육수를 바로 부어 즐길 수 있는 국수와 우동부터 즉석 핫도그, 얼려 마시는 음료인 '슬러피' 같은 즉석식품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편의점은 ‘펫숍’ 역할까지 하고 있다. GS25에서는 반려동물의 질병 체외 검사 키트 ‘어헤드’를 구입할 수 있다. 동봉된 시약 막대에 반려동물의 소변을 묻혀 전용 애플리케이션에 읽히면 자동으로 분석해준다. 당뇨병, 방광염, 신부전 등 10가지 이상 질병의 징후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에서 인기다. 반려동물 보험도 판매한다. 지난 3월 이 회사는 현대해상과 함께 반려동물 보험 상품 '하이펫 애견보험'을 출시했다.

평소에는 소비자들이 주로 간식이나 안줏거리를 사기 위해 찾던 편의점이 요즘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전국 4만개에 달하는 점포망을 무기로 상품 공급과 함께 각종 생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 시설로 진화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최근 시장이 포화된 게 아니냐는 지적과 상관없이 편의점은 새로운 생활 밀착형 서비스라는 강점 덕택에 앞으로 지속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박주영 숭실대 교수는 “편의 서비스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 이라며 “앞으로도 편의점이 각종 서비스 제공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과거 단순히 점포 늘리기가 전부였던 국내 편의점들의 확장 전략도 ‘양보다 질’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편의점 산업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예전만큼 공격적인 점포 늘리기가 어려워지자 주요 편의점들이 가맹점 1곳당 수익을 올리는 데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인기 프로그램 ‘골목식당’ 처럼 본사 전문가가 매출이 좋지 않은 점포를 찾아 종합 컨설팅을 통해 점주의 영업 전략을 확 바꿔주거나 매장을 리뉴얼해 중대형 점포로 확대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상권 변화나 다양한 이유로 매출이 부진한 가맹점포에 각 분야 전문가를 파견해 컨설팅해주는 매출 개선 프로그램 '클리닉 포 유'를 올해 1분기까지 4200개 가맹점에 적용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맹점의 평균 매출이 전보다 20% 올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클리닉 대상 점포로 선정되면 발주와 진열·판매 등 점포 운영의 기초를 다져주는 영업 전문가, 빅데이터에 따라 상품 운영 전략을 제시하는 트렌드 분석 전문가, 점포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는 점포시설 전문가로 이뤄진 클리닉팀이 매장을 찾아 각 점포 상황에 맞춘 컨설팅을 진행한다.

실제 최근 인근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생겨 매출이 급격히 떨어진 서울 신림동 CU에 파견된 클리닉팀은 매장 구조와 상품 판매 비중 등을 꼼꼼히 분석한 뒤 “시식 공간 일부를 줄이고 대신 그 자리에 택배 공간을 설치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상권 특성상 매장에서 먹거리를 먹기보다는 가져가는 고객이 많고, 편의점 택배 서비스 이용률은 다른 점포보다 높다는 데 맞춘 것이다. 점주가 여기에 맞춰 매장을 바꾸자 택배 이용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추가 매출이 나와 이 점포의 영업 부진이 해소됐다.

올해부터는 새로 문을 연 가맹점에 모두 전문가팀을 보내 초기에 빨리 매장 운영이 안정될 수 있게 하는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개점 후 한 달 안에 창업지원팀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 점주의 어려움을 조기에 진단하고 이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븐일레븐 본사인 코리아세븐은 기존 가맹점의 영업 공간을 넓히는 ‘광개토 프로젝트’로 매출을 키우는 전략을 펴고 있다. 기존 점포를 대상으로 점포 바로 옆 다른 공간을 추가로 임차하거나 점포에 불필요하게 방치된 공간을 찾아 영업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가맹점 500여 곳의 평균 영업면적은 4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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