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코로나發 빚더니에 희망 잃어...자영업자 극한의 '생존게임'
[기획] 코로나發 빚더니에 희망 잃어...자영업자 극한의 '생존게임'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1.10.05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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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6번째 사회적 거리두기 재연장 조치를 발표한 지난 1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손님으로 한창 붐벼야 할 가게의 빈자리를 보며 한숨 쉬었다.

3년 전 그는 용산구 한강대로에 위치한 일명 ‘용리단길’에서 식당문을 열었다. 김씨의 고깃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거듭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맛 하나로 최고의 식당을 만들겠다던 포부는 물거품이 됐다. 이제는 꼬박꼬박 돌아오는 월세 내는 날이 가장 두렵다. 김씨는 “창업비용을 아끼기 위해 숟가락부터 젓가락까지 발품을 팔아 꾸민 삶의 터전”이라며 “자본력이 아닌 맛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쌓여가는 빚더미에 맥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고 씁쓸해했다.

코로나19는 이미 한계상황이던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계층 이동 사다리를 아예 부러뜨렸다. 불황에 견딜 기초체력이 약한 영세 소상공인에게 코로나19는 ‘통곡의 벽’처럼 느껴졌다. 정부는 소상공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방역 조치를 쏟아냈다. 이렇다 할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각론이 모여 중지가 형성돼야 할 공론의 장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막무가내 행정 명령으로 문을 닫거나 수시로 영업시간을 제한받은 것만 수개월째. 전국 자영업자들이 품었던 계층 이동 희망은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 정부의 획일적인 방역 정책으로 생채기만 가득하다.

◆자영업 비중 사상 최저… 쓰러지는 개인사업자들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콘텐츠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유튜브 영상은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으로 게임에서 탈락하는 자영업자들을 보여준다. 영상 속 헬스장 관장과 음식점 사장 등 자영업자는 속속 경쟁에서 탈락한다. 25만원의 국민지원금을 받는 주인공은 “여기가 더 지옥이야”라고 절규하기도 한다.

이를 과장된 풍자로만 치부하긴 어렵다. 자영업자들의 현실은 이미 ‘생존 게임’이 된 지 오래다. 지난달 한국경제연구원이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 자영업자 10명 중 4명은 폐업을 고려 중이었다.

폐업 고려 이유는 매출액 감소(45%)가 가장 컸고, 고정비 부담(26.2%) 및 대출상환 부담·자금사정 악화(22%)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 자영업자 84만명이 모인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폐업하는 이들의 문의글이 일주일에 수십건씩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장사를 접으며 “메르스도 돼지열병도 최저임금 인상도 이겨냈다…. 어느 순간 매출은 떨어지고 겨우 쥐어짜야 내 인건비를 건지는 장사. 코로나에 항복했다”거나 “더 버티자니 영업해서 겨우 임대료만 내고 인건비도 안 나오는 현실에 힘만 빠진다”, “텅빈 가게 보면서 지겹고 지쳐서 가게 내놓았다”고 하소연한다.

정부 방역 조치 최전선에서 어려움을 감내해 온 자영업자의 현실은 다른 통계로도 증명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8월 자영업자 수는 555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달과 비교해 11만2000명이 줄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30만1000명으로, 2019년보다 23만7000명 감소했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8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벼랑 끝에서 버티던 자영업자들은 최근 들어 안타깝게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전국 자영업자 가운데 최소 22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 달 7일 서울 마포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같은 달 12일 전남 여수 치킨집 주인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세상을 등졌다.

◆“빛이 안 보여”… 빚내서라도 장사

경영난에 빠진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접으면서 노란우산 퇴직 공제도 급증하고 있다. 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노란우산 퇴직 공제금 지급 건수는 총 4만839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4만1257건보다 17% 급증한 수치다. 지역별로 경기도가 전체 25.9%인 1만25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1만1822건(24.4%), 인천 2763건(5.7%), 경남 2515건(5.1%), 부산 2461건(5%), 대구 2154건(4.4%), 경북 1841건(3.8%) 등 순이었다.

지난해 지급된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 규모는 7283억원에 이른다. 2019년 지급액 6414억원 대비 13%나 증가한 것으로 2007년 노란우산공제회 출범 이후 최고치다.

노란우산은 자영업자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폐업을 해야 받을 수 있는 공제금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기도 하다.

거리두기 4단계 지속으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은 거리두기 중심의 현행 방역체계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방역 수칙은 엄격히 적용하되, 경제활동은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새 방역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주장의 골자다.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해 지난 1일 연장 조치를 마지막으로 고강도 영업제한 위주 방역은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상공인들은 현행 방역체계에 대해 “사람들로 북적이는 백화점과 마트 등은 내버려두고 자영업자만 힘들게 하는 불공평한 조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매출 하락은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감염병 확산을 막는 ‘공익’을 위해 희생한 것이기에 손실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된 ‘잃어버린 3달’ 같은 사회적 비극이 반복되는 상황을 멈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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