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료비·공공요금·최저임금' 삼중고… 자영업자들 "영업할수록 손해"
[기획] '재료비·공공요금·최저임금' 삼중고… 자영업자들 "영업할수록 손해"
  • 김기환 기자
  • 승인 2022.07.11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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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비가 너무 올라서 음식 팔아도 남는 게 없어요.”

서울 동작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60대 백모씨는 최근 식용유를 구매하면서 깜짝 놀랐다. 18ℓ짜리 업소용 식용유 가격이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2만5000원이었지만 7만원대로 3배 가까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식용유뿐만이 아니다. 주재료인 고기는 물론, 채소 등 부재료 가격도 급등했다. 지난 2월 한 포대(20㎏)에 2만1000원이던 밀가루는 지난달 3만원을 넘어섰고, 상추는 한 박스(4㎏)에 2만원이었지만 이젠 8만∼10만원으로 4배 이상 올랐다. 돼지고기는 ㎏당 2만원에서 3만원으로 뛰었다. 백씨는 재료비 장부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서울 서초동에서 5년째 호프집을 하는 이모씨는 “올 들어 임대료, 식자재, 인건비, 공과금 등 안 오른 게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작년보다 5% 올랐는데 최저임금만 줘서는 아르바이트 구하긴 불가능하다. 이씨는 “배달 라이더로 몰리다보니 지금은 시급을 1만2000원까지 올려도 아르바이트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재료비 오른 만큼 음식값을 마냥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가 상승으로 손님들 주머니도 가벼워졌는데, 음식 가격마저 올리면 그나마 있던 손님들까지 발길을 끊을까 봐 걱정이다. 백씨는 “동네 단골 장사라 가격을 무턱대고 올릴 수가 없다”며 “반찬 구성만 바꿔도 불만이 나온다.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끊길 것”이라고 토로했다.

우크라이나발(發) 충격 등에 따른 ‘역대급’ 물가 급등에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치솟는 재료비 부담에 전기료 등 공공요금까지 오르고, 내년에 최저임금 인상마저 예고되는 등 ‘삼중고’가 몰아닥쳐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재기를 꿈꾸던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영업할수록 손해”라는 한탄이 터져 나온다.

10일 통계청의 지난달 품목별 물가 상승률에 따르면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4.8% 뛰었다. 대표적으로 많이 오른 품목은 감자 37.8%, 밀가루 36.8%, 배추 35.5%, 돼지고기 18.6% 등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40대 김모씨는 “올해 초에 마트에서 튀김가루(1㎏)를 샀을 때 2200원 정도였는데, 지난 주말에 갔을 때 3200원이었다”며 “고기부터 채소, 해산물 등 안 오른 재료가 없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급등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 1일부터 전기요금이 1킬로와트시(㎾h)당 5원 인상되면서 전기를 많이 쓰는 PC방, 노래방, 24시간 음식점 등의 부담은 더 커졌다. 경기 용인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30대 김모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해제 이후 24시간 영업을 했지만, 최근 손님이 적은 새벽엔 문을 닫고 하루 15시간만 운영한다. 에어컨과 100대의 컴퓨터를 계속 돌리기에는 전기료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전기료를 400만원가량 지출했는데, 앞으로 매달 30만∼40만원 더 나갈 것 같다”며 “코로나19 피해를 좀 회복할 줄 알았는데 하필 이때 전기료가 올라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도 최저임금 5% 인상이 확정되자 자영업자들은 고육지책을 마련하고 있다. 편의점 점주들은 심야에 물건 가격을 3∼5%가량 올려 받는 ‘할증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전편협)는 인건비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며 편의점 본사 측과 협의해 심야에 물건 가격을 올려 받겠다는 입장이다. 전편협은 성명을 통해 “코로나19로 소상공인에게 손실보상금까지 지급하는 상황에 최저임금 5% 인상은 모두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료비와 인건비 등의 고정비 상승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무인점포 및 1인 가게로 전환하는 업체들도 속속 늘고 있다. 세탁소, 밀키트 판매점, 꽃집, 휴대전화 매장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무인화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샐러드 가게도 최근 직원을 내보내고 키오스크를 설치해 낮에는 유인으로, 저녁 이후에는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장 A씨는 “포장이 많은 가게 특성상 키오스크를 설치해 일정 시간 동안 무인가게로 운영하고 있다. 인건비 부담도 줄고, 저녁 시간엔 신경을 덜 써서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부담이 계속 커지는 만큼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고임금·고금리 등 자영업자들에게 악재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폐업이 속출하고 자영업자들의 부채 위기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물가·경기·부채 등을 함께 바라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한 영업 제한이 끝나고 정상 영업이 시작되자 그동안 동결하거나 인하했던 임대료를 다시 올려 받는 건물주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강남대로 인근 소규모 상가의 1분기 임대료는 작년 4분기보다 7.9% 뛰었다. 서울 영등포(10%)·광화문(7%), 홍대·합정(5.8%), 공덕 (5.7%) 등도 마찬가지다. 서울 강서구에서 PC방을 하는 김종우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장은 “금리까지 크게 오르다 보니 코로나 때 동결하거나 인하한 것까지 반영해 임대료를 20% 이상 올리는 곳이 많다”며 “정부에서 준 보상금은 업주들 피해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기홍 소상공인연합회 이사는 “소상공인들 사이에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많다”며 “9월에 이자 상환 유예 조치까지 끝나게 되면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인플레이션 탓에 소비까지 위축되면서 답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공공요금에 대해서는 바우처 제공 등을 통해 비용을 낮춰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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