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는 일본기업 아닙니다
[기획] 우리는 일본기업 아닙니다
  • 김기환 기자
  • 승인 2019.08.06 0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다이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배제를 강행하면서 일본을 향한 국민 분노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네티즌들은 생활 속 일본 제품을 찾아내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국산품 리스트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을 넘어 투자 관계, 가족 관계 등을 따지며 '일본 기업 색출 작전'을 펼치고 있다.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 비장한 구호까지 등장하면서 분노의 칼끝은 롯데, 쿠팡, 다이소 등 일본과 관련 있는 기업들에 무차별적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롯데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롯데는 사실상 일본 기업이니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그룹이 일본롯데와 지분 관계에 있고 합작사가 많다는 게 이유다. 유니클로는 롯데쇼핑이 49%, 무인양품은 롯데상사가 40%, 롯데아사히주류는 롯데칠성이 5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이미 불매운동 유탄을 맞아 매출이 곤두박질친 상태다. 세븐일레븐도 표적이 됐다. 지난 4일 롯데가 가맹점주들에게 '미국 세븐일레븐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 브랜드가 아니다'는 안내문을 배포했으나 이는 오히려 공격 빌미만 제공했다. "일본이 미국 세븐일레븐에 투자했으니 일본 기업이다" "GS 편의점 가면 된다" 등 비난과 조롱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일부 소비자는 롯데주류와 롯데제과 술·과자까지 불매운동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펴고 있다.

롯데는 참 파란만장하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용지를 제공하면서 한중 갈등이라는 고래싸움에 끼여 등이 터졌는데 또다시 한일 갈등의 격랑에 휩쓸렸으니 말이다.

롯데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하면서 사드 보복으로 롯데가 입은 유·무형 피해는 약 3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야심 차게 추진했던 중국 사업이 외교·안보 불똥이 튀면서 잿더미가 되고 만 것이다. 중국의 핍박을 받던 당시에는 국민 동정론이 일었고, 진정한 애국 기업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심지어 당시 롯데 제품 구매운동 움직임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뿌리가 일본이라는 이유로 불매운동 대상으로 낙인찍혀 뭇매를 맞고 있다. 중국에 뺨 맞고, 일본에 치이는 동네북 신세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으로 분류돼 수난을 겪고 있다. 롯데 측은 "2015년 경영권 분쟁 이후 지주회사를 만들어 계열사 66개를 편입시키는 등 일본과 연결 고리를 끊어왔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롯데가 지난해 낸 법인세만 1조5800억원이고, 한국 고용은 13만명이다. 하지만 일본롯데 지분이 투자된 호텔롯데 한국 상장이 늦춰지면서 여전히 국적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 쿠팡도 최근 '일본 기업'이라는 주장에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하며 해명에 나섰다. 쿠팡이 일본 기업이라는 소문이 돈 것은 재일동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두 차례 30억달러를 투자한 것 때문이다.

외자 유치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데 한일 갈등 소용돌이 속에서 대역죄가 돼 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쿠팡이 "사업 99% 이상을 국내에서 운영한다"며 "일자리 2만5000개를 만들고 연간 인건비 1조원을 지급한다"고 억울함을 토로했겠는가. 다이소 역시 일본 다이소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한국 기업으로 일본에 중소기업 제품 수출까지 하고 있다.

'안 사고 안 먹고 안 가고 안 쓰는' 불매운동은 일본의 고약한 행태에 대한 맞대응이라는 점, 개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너무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일자리를 만들고 한국 직원에게 월급 주는 기업까지 일본 기업으로 낙인찍는 행태는 위험천만하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한국 기업에 일본 기업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에 일본이 과연 타격을 받을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본이 한국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을 우리가 일본 기업이라고 규정하고 때리는 것은 일본이 볼 때 일종의 자해이자 자중지란이다. 이런 식이라면 일본이 한국의 분노에 긴장하기는커녕 좋아하지 않겠는가.

우리끼리 편 가르기를 하고 치고받을 때가 아니다. 일본이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려면 우군을 많이 확보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일본이 준 시련을 도약의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고 뭉치게 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